손목 통증에 시달리면서 다양한 키보드, 마우스들에 대해 알아봤고, 결국 분리형 커스텀 키보드인 Lily58 Pro를 구입해서 사용해봤습니다. Lily58 Pro는 이름처럼 양쪽에 총 58개의 키가 달린 키보드이고요. 분리형이라 키보드가 양손으로 나뉜 형태의 키보드로 일반적인 키보드와 생김새와 사용 방법이 아주 다른 키보드입니다. 오늘은 이 생소한 키보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아… 정말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주문은 10월 중순에 했는데 DHL에서 물건 분실되고, 다시 주문해서 가뜩이나 늦게 왔는데 제가 납땜을 엉망으로 해서 기판 한 세트 날려먹고, 클리앙 회원 한 분이 도움을 주셔서 겨우겨우 완성을 했고, 실제 사용을 시작한 건 11월 말이 되어서였습니다. 키보드 하나 완성하는데 한 달이나 걸렸네요. 사실 조립 자체는 3-4시간 정도에 끝났기 때문에 제가 뻘짓만 안 했으면 훨씬 더 빨리 쓸 수 있었을 겁니다.
암튼 그렇게 어렵사리 완성을 하고 실제로 사용한지 이제 한 달여가 되었네요.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사용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고, 어느 정도 제가 원하는 기능을 대부분 세팅을 한 상태가 되어서 이제는 이 제품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국내에서는 제가 사용 중인 Lily58 Pro 뿐만 아니라 분리형 커스텀 키보드에 대한 리뷰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서, 이런 분리형 커스텀 키보드를 알아보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바로 한달 동안 사용해보면서 느낀 장단점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장점
1. 분리형
- 아주 큰 장점입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일반적인 키보드는 양손을 모아서 타이핑할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에 어깨가 넓거나 덩치가 클수록 타이핑할 때 손목의 꺾임도 커지게 됩니다. 원체 손목이 건강하신 분들이나 젊은 분들은 괜찮을 수 있지만 야금야금 손목 건강을 갉아먹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가운데가 벌어지고, 솟아 있는 인체공학형 키보드이긴 합니다만 제가 알아봤던 인체공학형 키보드는 저마다 치명적인 단점들을 하나씩 꼭 가지고 있어서 저는 아예 분리형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분리형을 쓰면 양 팔과 일자 방향이 되도록 양쪽 키보드의 각도를 변경해서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손목이 꺾이질 않습니다. 예전에, 특히, 해피해킹을 쓸 당시에는 펑션키가 오른쪽 구석에 있고 방향키를 사용하려면 이 펑션키를 누른 상태에서 써야하기 때문에 방향키 누를 때마다 손목이 심하게 꺾였습니다. 그래서 제 손목 건강이 처음으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게 바로 해피해킹을 쓰면서부터 였습니다. 키압과 손목 문제 때문에 키크론 K6로 바꾸면서 펑션키 배열이 바뀌어서 이 문제는 좀 덜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반적인 배열의 키보드로는 쉬프트를 누를 때나 단축키를 누를 때 손목이 꺾이는 동작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리형은 키보드 방향 자체를 자유롭게 둘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꺾임 증세가 확연하게 줄어들게 되며, 그마저도 다음에 언급할 키맵 변경을 통해 거의 없앨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각도뿐만 아니라 사이의 거리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이핑할 때 어깨를 좁게 말아서 쓸 필요가 없어서 라운드 숄더에도 아주 좋습니다. 현재는 이미 통증이 있는 상태였고, 꽤 안 좋은 상태여서 병원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만 아마 분리형 안 쓰고 기존 키보드를 아직도 쓰고 있었다면 증세가 훨씬 더 심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 오쏘배열
- Lily58 Pro는 일반적인 키보드의 배열과 달리 위열과 아랫 열 키들이 수직으로 되어있습니다. 문랜더도 마찬가지로 오쏘배열이었는데 처음에는 이게 적응이 너무 안돼서 오타가 엄청났는데 이제는 일반 키보드 배열이 훨씬 더 오타가 많이 나올 정도로 오쏘배열에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오타가 심해서 불편하기만 하고 뭐가 좋은지 몰랐는데 다시 일반 키보드 배열을 쳐보니 그동안 얼마나 손가락이 많이 혹사를 당하고 있었나를 알 수 있겠더라고요. 일반 키보드 배열은 손가락이 좌우로, 대각선으로 엄청 움직여야 하는 반면 오쏘배열의 경우 손가락이 위아래로만 움직이고 검지 손가락만 두열을 담당하기 때문에 손가락의 이동 범위가 굉장히 줄어듭니다. 그래서 적응이 되면 손가락이 아주 편합니다.
3. 키맵 변경
- 이건 꼭 Lily58 Pro가 아니더라도 QMK, ZMK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키보드라면 모두 가능한 기능인데요. 키보드에 들어가는 모든 키를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습니다. 이게 어찌보면 본인에게 최적의 배열을 찾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그럴 때는 그냥 기본값으로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저도 한 달 내내 기본 배열만 쓰다가 제가 원하는 대로 세팅을 마친 게 겨우 어제였습니다. 하지만 본인에 맞게 세팅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하면 편리함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일단 레이어를 나눠서 각 레이어마다 전혀 다른 키보드를 만들 수가 있는데요. 저는 기본 레이어는 일반 키보드와 동일하게 배열을 해뒀고, 다른 레이어에는 방향키와 마우스키, 단축키 등을 지정해두었습니다. 이 배치를 결정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는데 그마저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히 편해짐을 느낍니다. 일단 방향키는 키가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레이어를 별도로 둬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요. 다른 기능은 본인의 설정에 따라 편리함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마우스 키의 경우 마우스로 정밀한 작업을 할 때 이외에는 키보드에서 손을 뗄 필요 없이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편리하고요. 크롬에서 뒤로 가기, 맥에서 데스크톱 화면 넘기기나 개발 툴의 단축키들을 하나의 키로 매핑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커맨드, 쉬프트, 방향키 같이 2개 내지는 3개의 키를 조합해서 눌러야 사용 가능했던 기능들을 하나의 키로 사용이 가능하니 훨씬 더 편하더라고요. 그 외에도 프로그래밍 언어에 따라 코드의 마지막에 반드시 세미콜론을 넣어줘야 하는데 코드의 어느 위치에서든 ;를 누르면 커서가 맨 마지막으로 이동해서 ;가 입력되도록 매크로를 지정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커서를 뒤로 이동해주고, ;를 눌러야 했겠지만 한 번에 다 가능해졌죠. 그리고 asdf, jkl; 키를 쉬프트, 커맨드, 컨트롤, 알트 같은 모디 키로 대체해서 쓸 수 있는 홈로모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짧게 누를 때는 일반적인 키로 작동을 하지만 지정한 시간만큼 키가 눌리게 되면 모디 키로 작동하게 되는 기능인데요. 보통 조합하는 키를 누를 때까지 모디 키를 누르고 있는 점을 착안해서 만든 기능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적응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일단 적응하고 나면 양쪽 끝에 위치한 쉬프트 키도 사용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손목이 꺾이는 동작이 아예 사라지게 됩니다. 이 외에도 아예 넘버 패드 레이어를 별도로 만들어서 상단의 숫자키를 다른 기능으로 빼버리고 숫자는 넘버 패드로 쓰는 방법도 있고, 다양한 기능들이 많이 있지만 그걸 모두 다 활용하지 않더라도 이만큼만 해도 컴퓨터 사용이 확연하게 편해집니다. 기능적으로나 건강적으로나 모두요.
4. 커스텀
- 저는 무선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별다른 커스텀할 수 있는 요소가 없습니다만. 유선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OLED 창을 달아주기도 하구요. LED를 달아서 이것도 본인의 입맛에 맞게 커스텀을 할 수 있습니다. 키보드 바닥면 주변으로 LED를 설치하는 언더 글로우도 가능하다고 하고요. 무선의 경우 배터리가 이런 요소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냥 안된다고 보시면 됩니다만 유선의 경우는 좀 더 커스텀할 여지가 있고, Lily58 Pro를 비롯해 대부분의 이런 분리형 커스텀 키보드들이 오픈소스라서 다양한 곳에서 여러 가지 자재로 만들어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FR4, 아크릴이 일반적이지만 나무로 만든 곳도 있고, 아예 공제로 완성품으로 나오는 제품도 있기도 합니다.(이런 공제로 나오는 제품은 진짜 이쁘고, 진짜 비쌉니다). 이렇게 커스텀을 하려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점도 장점입니다.
2. 단점
1. 완성까지 고난의 길이 기다림
- 위의 강력한 장점에 반해 아주 강력한 단점이 완성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일단 국내에는 사용자 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그 흔한 리뷰조차도 찾아보기 힘들고, 주문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설정을 해야 하는지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전무한 수준입니다. 조립은 그나마 해외에 조립을 라이브로 하는 영상들이 많이 있어서 그거 그대로 따라 하면 되고 난이도 자체도 생각보다 상당히 낮아서 조립 자체는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납땜이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납땜하는 방법에 대한 공부도 미리 많이 해보시고, 미리 따로 납땜 연습도 해보시길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제가 그냥 영상만 믿고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대충 작업했다가 기판 두 개를 날려먹었거든요 ㅠㅠㅠ 그리고 납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초보 분이라면 반드시 유연 납으로 작업하시기 바라요. 무연납이 덜 유해하다고 하는 데 사용하기가 더 까다롭고, 잘못 납땜했을 때 초보는 복구가 그냥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거로 스트레스받느니 초보자라면 유연 납으로 작업하시는 게 정신건강 면에서 훨씬 낫습니다.
조립 외에도 소프트웨어 설치도 해야하고, 본인의 입맛대로 설정하려면 코드 수정해서 빌드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정보가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고, 게다가 이게 전문적인 지식이 섞이는 내용이다 보니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디스코드에 관련된 챗방이 있어서 질문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답이 달릴 정도로 활성화가 되어 있기는 한데, 영어로 질문도 쉽지 않은데, 상대방이 한 말을 알아듣기도 어려워서, 영어가 약한 분들에게는 상당히 장벽이 큽니다. 그나마 문랜더같은 경우는 완제품으로 올뿐더러 전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냥 화면 보고 세팅만 하면 돼서 간편하지만 Lily58 Pro의 경우 위에서 말한 모든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코드를 수정하면서 써야 하고, 그 코드를 조금만 잘못 수정해도 컴파일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에러가 발생하면 에러 문구 가지고 수정을 해야 하는데 외국 사이트에서도 이런 자료는 잘 없기 때문에 혼자 수정하기도 막막하기도 하고요. 공식문서를 보면서 하나하나 따라 하면 어렵지 않다고는 하는데 저는 그대로 했는데도 잘 되지 않아서 고생을 좀 많이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제품 자체는 좋아서 강추하지만 누구나 도전하라고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2. 가격
- 기판과 재료들만 봤을 때는 한대 제작하는데 10만원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제작이 가능합니다만 배송비가 5만 원 가까이 들고, 키보드 스위치, 키캡이 추가되면 이것도 가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게 올라갑니다. 저도 처음에 계산을 착각해서 두 대 만드는데 30만 원이 채 안 드는구나 했는데 다시 계산해보니 40만 원이 훌쩍 넘었고, 그마저도 기판 두 개 날려먹는 바람에 15만 원이 추가로 들어서…. 거의 다 만드는데 60만 원 가까이 들었습니다. 한 번에 제대로 만든다고 치면 스위치나 키캡을 뭘 쓰냐에 따라 최소 20만 원 중반에서 30만 원 이상까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집에 납땜할 인두기나 재료가 없으면 인두기 값, 재료값도 추가가 되고요. 조립이 끝나면 소프트웨어 설정을 직접 해야 되기 때문에 그 작업에 들이는 본인의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생각보다 굉장히 비싼 키보드입니다. 게다가 망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가격 장벽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키보드가 10만 원만 넘어도 비싸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가격만 해도 이미 키크론 K6 두 대 값을 넘었고, 저런 세팅들까지 해야 하니 사실 매니악한 부분이 많고, 매니악하다 보니 대량생산이 안돼서 가격이 낮아질 수가 없죠. 그래서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중화되기 어려운 거 같습니다.
3. 마무리
- 손목통증 고쳐보겠다고 인생의 마지막 키보드일 줄 알았던 해피해킹에서 벌써 키크론을 거쳐서 결국 커스텀 키보드의 세계까지 들어오게 되었네요. 위에서 말한 장벽을 넘을 각오가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Lily58 Pro의 만족도는 아주 높습니다. 기존에는 불편하지만 그게 당연했던 것들이 대부분 해소가 되어서 키보드 생활이 훨씬 더 편해졌기 때문이죠. 다만 이 비용을 들여서 키보드를 바꾸긴 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통증을 고치는 건 그냥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통증이 손을 많이 써서 생긴 통증이란 것도 알고, 병원 가봐야 주사 맞거나 물리치료하는 게 끝인데, 그것도 그때뿐이니 아예 근본적인 원인인 기기를 바꾸면 점점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키보드부터 바꾸기 시작한 건데요. 나아지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아픈 게 사라지진 않습니다. 기존 키보드보다 편해졌을 뿐이지 그렇다고 손을 안 쓰는 게 아니니까요. 거의 두 달을 고생했던 통증도 주사 한 번 맞고 나니 거의 80%가 사라지더라고요. 그동안 참으면서 다른 방법만 찾았던 게 참으로 미련하다 싶었습니다. 현재는 남은 20%의 통증을 치료 중인데요. 처음처럼 드라마틱하게 호전되지 않고 치료가 더뎌져서 좀 답답하긴 합니다만 제가 일을 쉴 수 없어서 계속 손을 쓰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머지 않아 QWERTY 방식에서 벗어나서 콜맥 방식으로 영타를 변경해보려고 합니다. 조금 연습해보니 이게 또 손가락이 상당히 편해지는 배열이더라고요. 손가락, 손목이 고통받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Lily58 Pro에 대한 후기는 여기까지고요. Lily58 Pro, 분리형 키보드에 관심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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